일상의 공간에 대한 밀착된 시선
-신혜영,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조소를 전공한 성민화는 그간 전형화된 조각 작품이 아닌 공간을 해석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설치 방식을 고수해왔다. 초기에는 플럭서스나 해프닝과 같은 독일 성향의 ‘오브제 설치’가 대부분이었다면 몇 년 전부터는 일상에 대한 자신의 밀착된 시선을 담은 ‘드로잉 설치’를 주로 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타지인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좀 더 긴밀해지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드로잉이 적합한 방식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성민화의 '드로잉 설치'는 일반적인 드로잉과는 달리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다른 형태로 재탄생 한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을 종이에 얇은 선묘(線描)로 드로잉하고 그것을 컴퓨터 상에서 확대하여 분할한 뒤 다른 재료의 분할된 평면에 손 혹은 기계로 재현해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재구성해 배열하고 특정 공간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민화의 작업을 '드로잉 설치'라 지칭하는 것은 이렇듯 드로잉과 설치 두 요소가 작업 안에 핵심적인 양 축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Walk』전은 작가의 드로잉 설치가 처음 시도된 『Haus』전(2006)의 연장선상에서 그 내용과 형식 모두 한층 폭이 넓어졌다고 하겠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지난 전시가 작가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과 집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을 다루었다면, 이번 전시는 집 문밖을 나서 그녀가 자주 다니는 거리로 공간이 확장되었다. 흥미롭게도 작품 제목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생활반경을 엿볼 수 있다.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나서(「Way Out」)’ 걷다 보면 ‘슐뤼터 가의 집들(「12Neighbors, Schlueter street」)’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한참을 더 걷다 보면 ‘마아치 가(「Every second day, March street」)’가 나오며, 슐뤼터와 마아치 가(街) 사이에 삼각형을 이루는 지점에는 그녀가 자주 가는 ‘슈타인 광장의 오래된 가로등(「Street lights, Stein Platz」)’이 보인다. 이렇듯 그녀의 시선은 ‘집(「Haus」)’에서 나와 ‘걸으며(「Walk」)’ 만나는 곳들로 자연스레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작가의 삶의 공간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이며,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작가의 친숙한 시선을 따라 그려진 것들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역시 낯선 이국의 풍경이 아닌 친숙한 삶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한편 형식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두드러진다. 지난 『Haus』전에는 일정한 규격의 압축 폼보드에 디지털로 변환한 드로잉 이미지를 ‘평판 출력’으로 올리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이미지를 두꺼운 반투명 종이나 천 위에 레이저 프린트로 찍어내거나 나무 판 위에 ‘레이저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파내는 등 재료와 기법 면에서 훨씬 다채로워졌다. 또한 재료와 기법이 달라짐에 따라 분할된 화면의 크기나 배열 방식 또한 달리 하여 작품마다 적극적인 변주를 시도했다. 예컨대 각기 다른 집의 현관문과 계단을 그린 드로잉을 컴퓨터 상에서 확대, 분할한 뒤 그것들을 다시 크기가 다른 캔버스 위에 손으로 그려 완성한 「Way out」 연작은 크기와 비율뿐 아니라 높낮이가 다른 여러 개의 화면에 상이한 크기와 시점의 분할 이미지를 그려 넣고 퍼즐을 맞추듯 배열하였다. 이에 관람자 역시 이미지를 하나로 연결해 보고자 적극적인 시선으로 참여하게 되는 이 작품은 공간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해석이 돋보인다.
이렇듯 성민화의 ‘드로잉 설치’는 작가가 그린 원래의 이미지를 확대하고 분할하여 재배열함으로써 작가의 단일 시선이 아닌 관람자의 개입으로써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그것은 디지털이 개입되어도 차갑거나 매끈하지 않다. 아무리 새로운 소재와 첨단 기법을 사용하고 단위 화면들을 반복적으로 배열하여도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따뜻하고 거칠다. 그것은 직접 그린 손 드로잉을 원본 이미지로 하기 때문이며 그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가진 그녀가 자신의 삶 안에 작업을 녹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녀는 집 밖을 나와 가벼운 걸음을 내디뎌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작업이 앞으로도 그렇게 삶에 밀착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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